피렌체 출신 주요 인물 TOP 10
르네상스의 발상지 피렌체를 여행하게 되면 다양한 박물관과 미술관 등을 방문하게 된다.
워낙 예술적으로 부흥했던 곳이라 피렌체 출신의 중요한 인물이 정말 많지만, 그중 10명을 뽑아 아주 간단히 정리해 보았다.
1) 단테 알리기에리 (1265~1321)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시인이자 정치가였으며, 이탈리아어의 아버지로도 불린다.
10살 때 베아트리체를 보고 첫눈에 반하여 사랑에 빠졌으나, 당시 관습에 따라 이미 정혼자가 있던 상황이었다.
9년 후 우연히 길에서 베아트리체를 마주치게 되고 이때부터 사랑의 시를 쓰기 시작한다.
얼마 안 가 베아트리체가 갑자기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자, ‘신생(새로운 인생, La Vita Nuova)’을 간행하였다.
한편 단테는 정치인이기도 했는데, 꽤 명망 있는 자리까지 올랐다고 한다.
그러나 단테가 외교관으로서 로마에 머물던 도중 반대파가 피렌체를 장악하게 되었다.
결국 그대로 망명하게 되고, 이 힘들었던 시기에 완성한 것이 대표작 ‘신곡’이다. 그는 끝내 고향 피렌체로 돌아오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게 된다.
로마 시대 시인인 베르길리우스와 함께 지옥과 연옥, 천국을 여행하는 내용을 담은 단테의 ‘신곡’은 유럽의 문학사에 큰 획을 그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이탈리아어를 확립하는 데에도 지대한 역할을 하였다.
당시 문학 작품들은 지식인의 언어인 라틴어로 쓰였으나, 단테는 피렌체의 말인 토스카나 방언을 사용하여 썼고, 이후 이것이 이탈리아의 공용어가 되었다.
2) 조토 디 본도네 (1267~1337)
피렌체 출신의 화가이자 건축가이다.
중세 말~르네상스의 시작이 혼재하던 시기에 활동하였다.
이전에는 중세적 관습이 회화에도 계속 남아있었는데, 조토가 투사법과 인물의 사실적인 표정 묘사 등을 통하여 르네상스 예술로 그 흐름을 바꾸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조토는 피렌체 출신이지만 파도바, 아시시, 로마, 나폴리 등을 여행하며 작품 활동을 하였고, 그 과정에서 많은 명성과 부를 얻게 된다.
1334년에는 피렌체 두오모 대성당의 건설 책임 및 종탑의 설계를 맡았으나 완성 전에 사망하였다.
*피렌체에서 볼 수 있는 주요 작품 : 조토의 종탑(두오모 대성당 옆), 마에스타(우피치 미술관), 바르디 소성당 프레스코화(산타 크로체 성당)
3) 필리포 브루넬레스키 (1377~1446)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건축가.
피렌체 출신이며, 본래 금속 공예 기술을 익히며 조각가가 되고자 하였다.
산 조반니 세례당 출입문 관련한 공모전에 참가하여 그 유명한 기베르티의 ‘천국의 문’과 경쟁을 하였다.
낙선 후 로마로 건너가 고대 건축물을 배우고 건축가의 길을 걷게 된다.
피렌체로 돌아와 두오모 대성당의 돔을 제작하며 건축가로 유명해지기 시작하였다.
전통적인 방식들을 활용하면서도 새로운 시대에 맞추어 건축에 실현한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원근법을 발견하여 미술 발전에 큰 공헌을 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피렌체에서 볼 수 있는 주요 작품 : 두오모 대성당의 돔, 오스페달레 델리 인노첸티, 산 로렌초 성당
4) 도나텔로 (1386~1466)
피렌체 출신의 르네상스 시대 대표적 조각가이다.
르네상스 초기 양식을 창시한 거장으로 건축에서는 브루넬레스키, 회화에서는 마사초, 조각에서는 도나텔로가 꼽힌다.
초기에는 산 조반니 성당의 ‘천국의 문’을 조각한 기베르티의 조수로 일하였고, 고딕 양식이 남아있으면서도 르네상스의 새로운 이상을 추구하는 작품을 남기기 시작한다.
이후 10년 간 로마에서 고대 유적을 연구하며 조각하였고, 그 후 파도바에 10년 간 머물다 피렌체로 다시 돌아와 전보다 더 세련된 기법으로 작품 활동을 하였다.
생전에 많은 명성을 얻었으며 이후 근대 조각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는 기존의 중세 미술품들과 다르게 인간 육체의 개성, 인간의 감정을 조각에 표현하였다. 또한 조각에 원근법을 구사하였다.
*피렌체에서 볼 수 있는 주요 작품 : 청동 다비드상(바르젤로 미술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수태고지(산타 크로체 성당)
5) 산드로 보티첼리 (1445~1510)
르네상스 시기에 활동한 피렌체 출신의 대표적인 화가.
가죽 장인의 아들로 태어나 금세공 훈련을 받다가, 18세 정도에 화가 필립포 리피에게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사실 본명은 ‘알레산드로 디 마리아노 필리페피’이며 ‘보티첼리’란 ‘작은 술통’이라는 뜻인데, 술을 워낙 좋아하여 이러한 별명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 1470년 본인의 공방을 차리며 독립한 후 메디치가의 눈에 띄어 여러 작품을 의뢰받았고, 주로 역사와 신화, 종교 작품 및 초상화를 그렸다.
실제로 보티첼리가 그린 신화, 종교적 작품 내 등장인물의 얼굴들이 당시 메디치 가문 및 유명인인 경우가 많다.
기품 있고 우아한 여성상과 생기 넘치는 인물들, 아름다운 풍경, 부드러운 곡선으로 나타난 섬세함, 아름다움을 위하여 왜곡한 인체의 비례나 자세 등이 보티첼리 그림의 특징이다.
그러나 말년에는 도미니코회의 수도원장 사보나롤라의 사상에 크게 영향을 받아 그를 추종하게 되었고, 세속적이기보다는 종교적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으며, 미학보다는 성경의 의미 전달을 중시하게 된다.
본인이 그동안 그렸던 누드화 등을 부끄러워하며 태워버리기까지 하였다.
단테의 ‘신곡’에 삽화를 넣고자 전념했으나 결국 이루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피렌체에서 볼 수 있는 주요 작품 : 봄, 비너스의 탄생(우피치 미술관)

6) 레오나르도 다 빈치 (1452~1519)
피렌체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의 손꼽는 위인으로 화가이자 과학자, 건축가, 의학자, 천문학자였던 인물이다.
피렌체 공화국의 ‘빈치(Vinci)’ 마을 출신으로, 어린 시절 피렌체의 안토니오 델 베로키오 공방에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우피치 미술관에 있는 베로키오의 ‘그리스도의 세례’를 보면 꼬마 천사 둘이 나오는데, 그중 왼쪽에서 자세를 틀고 앉아있는 천사가 다빈치의 그림이다.
이후에도 우피치 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수태고지’, ‘동방 박사의 경배’ 등의 작품을 남겼다.
다빈치의 그림에는 원근법, 엄격한 구도와 비례 등 르네상스 시대 미술의 기법이 많이 녹아들어 있다.
또한 사물의 윤곽선을 뿌옇게 처리하는 ‘스푸마토 기법’을 도입하기도 했다.
서른 살이 된 후 밀라노로 거처를 옮기고 우리가 잘 아는 ‘최후의 만찬’ 등의 작품을 그렸다.
17년 간 이곳에 머물며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을 만나 식물학, 광학, 천문학, 해부학 등에 관하여 교류를 하였고, 밀라노가 프랑스에 함락된 1500년에 다시 피렌체로 돌아와 활동하다 프랑스 국 프랑수아 1세의 초청으로 다시 프랑스에서 말년을 보내게 된다.
*피렌체에서 볼 수 있는 주요 작품 : 그리스도의 세례, 수태고지, 동방 박사의 경배(우피치 미술관)
7) 니콜로 마키아벨리 (1469~1527)
피렌체 출신의 정치학자이자 역사가, 외교관이었다.
나름대로 비중 있는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철학, 역사 등을 공부하였고, 라틴어에 능했다.
1498년, 스물아홉 살의 나이로 피렌체의 제2 서기관으로 임명되었으며 이후 14년 동안 관직 생활을 하며 폭넓은 경험을 쌓았다.
당시 피렌체는 메디치 가문이 쫓겨나고, 수도원장이던 사보나롤라가 집권한 후 처형이 되었으며, 온건 중도파인 피에로 소데리니가 지도자가 되는 등 격동의 시기를 맞고 있었다.
또한 정치적 공백의 상황에서 프랑스 및 주변국과의 외교, 교황의 아들인 체사레 보르자와의 만남 등을 겪으며 ‘군주론’을 구체화하게 되었다.
피렌체 공화국이 해체되고 메디치 가문이 다시 군주 국가를 세웠는데, 이때 막 집권한 로렌초 메디치에게 ‘권력을 어떻게 획득하고 유지해야 하는지, 군주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 등을 정리한 ‘군주론’을 헌정한다.
그러나 이는 당시에는 로렌초의 주목을 받지 못했고, 추후에야 널리 인정을 받게 되었다.
8)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1475~1564)
피렌체 출신인 이탈리아의 조각가이자 건축가, 화가이다. 다 빈치, 라파엘로와 더불어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예술가로 꼽힌다.
어려서부터 그림에 뛰어났던 그는 가족들의 수차례 반대 후 당시 유명 화가인 도메니코 기를란다요의 제자가 되었으나 1년 만에 나오게 된다.
조각에 더 관심이 갔기 때문이다.
그러고 얼마 안 가 당시 통치자였던 로렌초 데 메디치의 눈에 띄어 14세부터 메디치가의 후원을 받게 된다.
이때 메디치 가문에서 뛰어난 미술품을 보며 자랄 수 있었으며, 그 외에도 유명한 학자들과 교류하며 플라톤의 철학, 라틴어, 문학 등 다방면에서 배움을 쌓을 수 있었다.
24세에 현재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에 있는 ‘피에타’를 조각하여 거장의 반열에 들어서게 되며, 37세에는 로마 시스티나 성당의 ‘천지 창조’, 60대에 ‘최후의 심판’ 등 조각뿐만 아니라 회화에도 걸작을 남기게 된다.
*피렌체에서 볼 수 있는 주요 작품 : 다비드 상(아카데미아 미술관), 반디니의 피에타(두오모 오페라 박물관), 똔도 도니(우피치 미술관), 라우렌치아나 도서관(산 로렌초 성당)
9) 라파엘로 산치오 (1483~1520)
위에 기술한 다 빈치, 미켈란젤로와 함께 르네상스 3대 거장으로 꼽히는 인물로, 피렌체 출신의 화가이자 건축가였다.
우르비노 공작의 궁정화가였던 조반니 산티 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그림을 많이 접했으며, 11세에 당대 유명 화가였던 피에트로 페루지노의 공방에 들어가 본격 활동하였다.
이후 1504년 피렌체로 옮겨가 피렌체 파 화풍을 배워 발전시켰는데, 특히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1508년 로마로 건너가 교황과 가톨릭 교회의 의뢰를 받아 수많은 작품 활동을 하게 되었다.
단정하면서도 우아하고, 명료한 색상을 활용하여 아름다움을 표현한 것이 라파엘로 그림들의 특징이다.
*피렌체에서 볼 수 있는 주요 작품 : 검은 방울새의 성모(우피치 미술관), 의자 위의 성모(피티 궁전 팔라티나 미술관)
10) 갈릴레오 갈릴레이 (1564~1642)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피렌체 출신 철학자이자 물리학자, 천문학자이다.
피사의 몰락한 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10세 때 피렌체로 가족과 함께 이사와 지내다, 피사 대학의 의대로 진학을 한다.
그러다 경제적인 어려움 등의 이유로 대학을 중퇴하고, 피렌체로 돌아와 수학과 과학을 연구하면서 동시에 가정교사 노릇을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이후 피사 대학, 파도바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며 본인의 연구를 이어나갔고, 당시 유럽에서 막 발명된 망원경을 토대로 자신의 망원경을 개량하여 천체에 대한 획기적인 관측들을 하게 된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달의 표면과 목성의 위성을 관측한 것이다.
이후 교직 생활을 그만두고 메디치가 소속의 전속학자가 되어 천문관측을 계속하였고, 그 과정에서 지동설을 확신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이후 교황청의 미움을 사는 계기가 된다.
지동설에 관한 강의를 하고 저서를 발행하던 그는 종교 재판을 받게 되고, 혐의를 인정한 후 시골에서 연구에 전념하며 살다 생을 마감하였다.
피렌체 출신 주요 인물 정리를 마치며
위에는 기술하지 않았으나 피렌체 출신의 화가, 학자, 음악가 등이 굉장히 많다.
많이 찾아보고 갈수록 성당, 미술관, 박물관 등에서 이해하며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나 이야기가 많아지니,
꼭 대략이라도 공부해보고 가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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